프로그램을 짜다가 잠깐 시간이 나서 취업 사이트에 들어가 채용공고를 보고 있었다.
문득 이게 뭐하는 짓인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만사가 귀찮아졌다.
게다가 취업 게시판에 올라온 그 많은 글들..
어떤 기업에서는 어떤 질문을 하고, 어떤 인상을 줘야 하고, 어떤 걸 외우고 가야하고...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떤 걸 물어보고, 읽어보고, 준비해야 하는지 전혀 갈피를 못잡겠더라.
그 때문인지 마음은 점점 조급해지고, 예의 걱정하는 버릇이 튀어나와서 "취업이라는 걸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했다.
취업이야 어디든 들어가면 되는거니까 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을 것 같지만, 핵심은 "내가 원하는, 내가 성장할 수 있는" 기업이 어디냐는거다..
사실 내가 원하는 것은 정말 한량처럼 사는 것이다.
소일거리하면서 용돈벌고, 좋아하는 책이나 쌓아두고 읽으면서 공상의 나래를 펴고, 사진찍으러 다니고, 집을 고치고, 가구를 만들고, 페인트칠을 하고, 전기배선을 손보고...
그러다가 애들이랑 공놀이도 해주고...
근데 이율배반적으로 사회적인 명성과 나 자신의 성공을 추구하기도 한다. 누구보다도 하드코어로 살수 있다고 자부하는 나지만 꿈꾸는 삶은 한량이라 나 자신도 어떤게 내 모습인지 헷갈릴때가 있다.
게다가 한량의 삶을 살려면 적정수준 이상의 수입이 필수다.
좋아하는 책을 사고, 사진장비를 구입하고, 집을 사고, 가구만들 재료를 사고, 전기배선을 고칠 공구를 사고...
한량의 삶을 꿈꾸면서도 현실의 한계에 부딪혀 다시 취업 게시판의 글을 읽기를 30여분...
결국 조금씩 천천히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게 포기인지 현실과의 타협인지, 뛰기 위해 잠시 웅크리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건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 수 있겠지..
그나저나 내가 성장한다는 것이 어떤 것일까? 어떤게 내가 성장하는 것일까?